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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별곡

'주식투자 패가망신' 고정관념이 한국사회에 자리한 역사를 알아보자

by lovefund이성수 2020. 11. 19.

'주식투자 패가망신' 고정관념이 한국사회에 자리한 역사를 알아보자

올해 2020년에는 크게 줄었습니다만, '주식투자는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오랜기간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무의식 중에 자리하다보니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하지요. 인터넷 상에 유머 게시판에는 "주식투자로 1억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제목은 써있고 "주식에 2억을 투자해서 반토막 나면 된다"는 씁쓸한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자리한 것일까요? 그 역사를 알아본다면 그 안에서 패가망신 하지 않는 주식투자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ㅇ 1962년 증권파동 : 패가망신 첫번째 사건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미두선물투기로 지역유지들이 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 이야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증권투자로 인해 패가망신 역사가 기록된 사례는 1962년 증권파동일 것입니다.

당시 증권거래소는 서울 명동에 있었고 상장 주식은 겨우 12종목이었습니다. 이 중 대증주(증권거래소), 연증주(증권금융), 한전주(한국전력)이 전체 거래량에 93%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급격히 증가한 통화량과 부동자금이 맞물리면서 1962년 증권파동을 만들게 됩니다.

 

원인을 알수 없는 가운데 책동전(세력 끼리 서로 주가 대결하는 양상)이 발생하였고 대증주의 주가는 순식간에 120배까지 끌어올려졌다 합니다. 1962년 초봄부터 5월 피크까지 단 몇개월 만에 말입니다.  이렇게 주가가 폭등하니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고 주식투자하면 대박난다는 소식에 명동 증권시장엔 돈이 넘쳐났습니다. 소 판돈, 달러시장자금, 고리대금자금 등이 증시로 달려들었고 당시 외상주문 까지 등장하며 주가는 끝없이 상승할 기세였지요.

 

하지만 5월 책동전이 종국에 이르며 5월 증권폭락! 즉 증권파동을 만들면서 당시 정부(?)는 증시파탄과 중소투자자(개인투자자)의 파산을 막기 위해 긴급자금을 의결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라 틀리지만 5300명의 개인투자자가 파산했다하기도 하고 수만명이 파산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후 10년 넘게 한국증권시장은 주식시장으로서의 구실을 못하였지요.

 

우리나라 증시 역사에 큰 오명으로 남은 1962년 증권파동은 수천~수만명의 개인투자자를 파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폭등하는 주가만 바라보고 외상거래(지금으로 치자면 빚투)까지 끌어왔으니 그 경제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ㅇ 1990년 1차 깡통계좌 정리 사태

 

[1990년 깡통계좌 정리사태는 92년까지 여파가 지속되었고...]

 

1980년대는 화려한 증시 랠리가 있었습니다. 1985년부터 1989년초까지 종합주가지수가 6~7배 상승하였으니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 정도에 엄청난 강세장이 펼쳐졌습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초강세로 기울면서 원화 약세 속에 한국 수출에 모멘텀 발생하였고 70년대 중후반과 80년 초에 비하여 매우 낮아진 저유가, 저금리가 엮이면서 3저시대 호황 그리고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88년 서울 올림픽 속에 소위 트로이카주라 불리우던 은행,무역, 건설업종의 질주 속에 주가는 당연한듯 계속 상승하였습니다.

 

주가지수가 6~7배 상승하였으니 개별 종목단위에서는 상상 이상에 상승률이 부지기수로 발생하였고 그러다보니 당시 투자자들은 당연한듯 신용융자를 사용하였습니다. 심지어 신용융자를 안쓰는 투자자들을 못난이 취급하였을 정도이니 그 당시 신용융자 사용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 해 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1989년 중반부터 하락한 주가는 90년초 주가지수 30%수준의 하락을 만들면서 시장에서 "깡통계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 되기 시작합니다. 80년대에는 신용융자 계좌가 단기 주가 하락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지더라도 조금 버티면 다시 상승하였었다보니 관행적으로 깡통계좌를 고객 관리차원에서라도 묵인하였습니다. 

85년부터 89년 초까지 4년여 강세장이 지속되었다보니 타성처럼 쌓인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89년부터 증시가 1년 반 조정장이 지속되고 조정폭도 주가지수 기준 -20~-30%에 이르니 깡통계좌는 급격하게 증가하기에 이릅니다. 계속 깡통계좌가 누적되는 상황 속에 자칫 금융시스템에 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1990년 10월 10일 당시 금융 당국은 전격적으로 담보유지 비율 100%미만의 깡통계좌를 일괄반대매매하기에 이릅니다. (마치 군사작전 처럼 전격적으로...)

당시 정리 대상 계좌수는 1만3천여 계좌에 금액은 3천억으로 추정되는 30년 전인 상황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가지수는 500p까지 하락하였고 과장을 보태자면 서울에서는 한집 건너 한집씩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았고, 한골목에 한집은 주식투자로 인한 빚더미에 파산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88년 이후 국민주 열풍도 있었기 때문에 전 국민이 주식투자를 알던 시기였던지라, 실질적으로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깡통계좌는 깔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1992년까지 계속 깡통계좌 정리는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ㅇ IMF사태 그리고 2000년 IT버블 붕괴

 

90년대 후반과 2000년 초반도 주식시장에서는 격동의 시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97~98년 찾아온 IMF사태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지요. 경제,사회,가정 모두에 악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대폭락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94년에 1145p에 있었던 주가지수가 1998년 277p까지 1/4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니 개별 종목에서는 상장폐지와 파산은 IMF사태 속에 셀수 없이 연이어졌고 당시 투자자들은 심각한 투자 손실을 겪게 됩니다.

 

다만, 그 당시 개인투자자의 충격은 2000년 IT버블 붕괴 충격이 워낙 컸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그 만큼 2000년 IT버블 붕괴는 주식투자로 인한 전 국민적인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IMF직후 한국증시는 단숨에 주가지수 1000p까지 상승합니다. 단 1년만에 주가지수 277p에서 1000p까지 4배 상승한 것입니다. 당시 명예퇴직 분위기 속에 퇴직금을 받고 퇴사한 중장년분들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년만에 주가지수가 4배 뛰었으니 분위기는 증시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될 분위기였지요.

 

그리고 99년 증시 분위기는 하반기로 들어가면서 코스닥 랠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새롬기술을 대장으로 코스닥 버블이 폭발하니 기술주들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집중되었지요. 그리고 1999년 바이코리아 열풍 속에 1차 펀드붐도 불면서 전 국민적인 주식투자,증권투자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당시엔 "펀드"라는 용어를 모르면 구세대 사람 취급 받을 정도였답니다.

 

그랬던 분위기가 2000년 IT버블이 붕괴되면서 화려한 증시는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그 하락장이 일장춘몽으로 끝난 수준이 아니라 버블 붕괴 속에 심각한 투자 손실을 경험하게 되지요.

코스닥지수가 2000년에 1/5토막이 났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1년만에 IMF사태급의 상황이 증시에서 벌어지고 만것입니다. 

워낙 전국민적인 주식투자/펀드투자 열풍이 있었다보니 전국 가정마다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말았고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전 1990년에 이어 또 다시 깊이 각인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2001~2002년 반등장이 있었지만 카드를 쉽게 발급하던 당시 분위기 속에 카드빚으로 미수풀베팅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손실만 누적되다가 2000년 초반 카드대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식시장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역사 과정]

 

 

ㅇ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직전 랠리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글로벌 증시 강세 속에 한국증시는 500p에서 2000p까지 4배 상승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승이었지요. 시간이 흐르다보니 IMF당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가계들은 살아나는 경제분위기 속에 돈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수년전 2000년 IT버블 붕괴를 겪고 IMF당시 증시 폭락을 경험하였기에 주식시장에서 오히려 상승장 초기 오히려 발을 빼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2003년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키워가던 적립식펀드를 중심으로한 공모펀드들의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다보니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온기가 지속되던 증시는 2005년 폭등장을 만들면서 불꽃을 일으켰고 2차 펀드붐의 조짐을 만들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수익률을 쌓아가는 공모펀드 그리고 차이나펀드의 성과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증시로 유입시켰으며 급기야 2007년 개인투자자가 가장 늦게 주식시장 전면에 공격적인 매수세를 만들며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투자에 상처를 입었던 투자자들은 공모펀드에 가입하면서 2007년에는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 지점에 긴줄을 서는 장사진이 심심치 않게 연출되었습니다.

그 화려한 랠리 속에 2006~7년부터 미수거래에 제약을 가하고 미수거래보다 상환기간이 긴 신용융자제도에 문을 열으면서 신용융자 자금이 2007년부터 개인투자자의 자금과 함께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강세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BRICs(브라질, 러시아,인도, 차이나)에 투자하던 펀드들은 반토막 수준을 넘어 2000년 코스닥 폭락장 충격을 경험하였고, 직접투자를 하던 개인투자자들 중에 빚투를 했던 상당수 개미들은 2008년에 심각한 손실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명동에서 증권사 프로젝트를 하던 저는 우연히 명동 모처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보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과학수사대가 왔었고 당시 뉴스에.... 주식투자 관련하여 ㅠㅠ)

 

 

ㅇ 과거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 최소한 빚투는 자제하자.

 

그나마 2010년대를 보내면서 과거 경험과 함께 개인투자자들이 스마트 해지고, 그 경험이 신규 개인투자자에게도 전해지면서 예전처럼 대책없이 묻지마 투자하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단순히 주가가 급등했다는 이유로 투자하기보다는 적어도 계산기 몇번은 두들겨보는 것이 현재 개인투자자입니다.

 

다만, 과거 1962년, 1980년대 후반, 1999년, 2007년 개인투자자들 처럼 빚투를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염려스러운 마음이 항상 마음 한켠에 있습니다.

얼마전 우연히 모 언론사에서 전화 인터뷰로 대화를 나누던 중 빚투에 관하여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리도 낮은데 빚투 주식투자에 당연히 써야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불과 8개월 전 코로나 사태 때 그리고 불과 1년 전 일본 경제보복으로 여름 증시에서 주가지수가 하락할 때, -10%수준의 주가지수 하락만으로도 마진콜과 강제청산이 발생하여 깡통계좌에 이른 개인투자자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은 듯 합니다.

 

지금 개인투자자분들 스마트 해 지신게 맞습니다. 하지만... 빚투의 무서움을 너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주식투자로 인해 어렵게 살았던 가정들

20년 전 IT버블 붕괴 속에 집을 팔아야했던 가정들

등등등... 다양한 선례들을 잊지 마십시오.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lovefund이성수 (유니인베스트먼트 대표, CIIA charterHolder)

[ lovefund이성수의 투자철학을 함께하세요, 애독과 좋아요~^^ 부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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