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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별곡

응답하라 1988, 당시 주식시장이 남긴 흔적은?

by lovefund이성수 2015. 11. 9.

응답하라 1988, 당시 주식시장이 남긴 흔적은?

지금으로부터 27년전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대적으로 많은 이슈들이 이어졌던 그 때, 주식시장은 드라마틱한 역사를 써내려갔고, 그 증시 역사는 한국 증시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면서, 지금까지도 교훈을 현재 투자자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 그 당시 주식시장 과연 어떠했을까요?

 

 

ㅇ 응답하라 1988, 그 시대의 단상

 

1988년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한해였습니다. 국가대표선수들의 금메달 행진처럼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은 계속 높아져만 가던 때였지요. 그리고 서서히 경제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비하여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90년대 중반까지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시작점이기도 하였습니다.

 

[응답하라 1988 포스터, 참조 : tvN]

 

그 당시 경제 확장분위기 속에 주식시장은 화려한 랠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88올림픽의 자긍심 속에 주식시장도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쳐나던 분위기가 바로 1988년에 과!하!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ㅇ 트로이카 열풍, 주식시장 연속 급등 행진의 시대적 흐름

 

1988년 납회일은 그야말로 잔치집 분위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종합주가지수가 1988년에만 70%급등하면서, 1987년말 525p에서 시작하여 거의 매달 상승하여 1988년말엔 907.20p로 마감하였습니다.

이런 당시 분위기는 1984년부터 시작된 상승장이 86년부터는 폭등장으로 변하면서 86,87,88년에 드라마틱한 급등장세로 이어진 결과물이었습니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폭등장이 이어지던 시기]

 

85년 이전까지의 80년대는 주가지수가 등락을 거듭하는 정도였지만, 86년부터는 폭등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86년에 66%, 87년에 92%, 88년에 72%나 주가지수가 폭등하면서 매해 증시는 광풍을 넘어 망상에 빠지기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86년 이후 증시가 폭등한 모멘텀에는 85년 가을에 있었던 플라자 합의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역적자가 지속되어 재정부담을 느껴온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 환율 절상을 합의하였습니다. 이 플라자 합의가 있은 이후 일본 엔화는 1달러에 235엔에서 86년에 120엔대로 환율이 변하며 초엔화 강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웃국가인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 엔화강세는 반대로 원화약세라는 기회를 얻으면서 일본이 장악했던 수출시장을 원저를 이용하여 확장하였고 여기에 일본이 경제를 방어하겠다며 금리를 내리면서 저금리 기조와 함께 저유가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3저시대 경기 호황을 맞이하였고, 그 반사작용으로 86년부터 88년까지 주식시장은 폭등 장세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에, 사회적으로는 88올림픽에 따른 자신감과 부동산 과열에 따른 넘치는 유동성의 주식시장으로의 유입 등 주식시장은 폭등의 폭등을 만들었습니다.

 

이 당시 증시를 주도했던 것은 트로이카 장세.

금융,건설,무역주들이 주가지수를 끌어올리며 폭등 장세를 이끌었습니다.

88년 총 거래량의 70% 이상을 트로이카 종목들이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 기세와 열기가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로이카 열풍 속 증권주의 폭등]

 

 

ㅇ 개인투자자가 결국 밀물처럼 들어오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나타나면서, 88년 말에는 새해(89년)에는 종합주가지수가 50%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 개미군단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농촌로(村老)를 증권사 객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방지점들의 거래약정 비중이 이전 30%수준에서 88년에는 60%로 급증하였고, 전국 주식투자 인구는 87년 310만여명에서 88년말에는 700만명대로 진입하기에 이릅니다.

 

 

[지방 지점의 과열도 나타난 88년, 자료 : 88년12월27일 동아일보]

 

그리고, 주식투자를 하는데 있어 신용융자가 필수적인 투자문화가 있었습니다.

주가가 빠지더라도 재빨리 다시 급반등하니, 신용융자로 베팅을 안하는 투자자는 바보로 취급될 정도였습니다.

 

결국, 88년 주식시장은 마지막 투자자금인 주식투자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시골 촌로가 소팔고 땅을 팔아 주식시장에 뛰어들면서, 애업은 애엄마가 증권사 객장에 나타나면서 서서히 상투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투자자는 그 광풍이 마지막 광풍이고, 시베리아 찬바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88년을 넘어 89년,90년을 맞이하고 결국 90년 깡통계좌 정리로 이어져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은 큰 상처를 남기고 마감하면서 80년대 장세를 마치게 됩니다.

 

 

ㅇ 1988, 응답하지는 않지만...

 

지나간 시간인 1988년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기록물로 남은 뉴스자료, 녹음테이프에 남은 별밤지기 이문세씨의 목소리 등이 아련하게 귀를 간지럽힐 뿐이지요.

하지만, 그 시절 시장 분위기를 담은 뉴스들은 인터넷상에서 혹은 큰 도서관에서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증시에 광풍이 불었던 그 1988년... 불러도 답을 안하고... 비록 지금 주식시장에서는 그러한 광풍 분위기 조짐도 보이지 않지만, 미리 마음속으로 주식시장이 상투일 때의 분위기를 과거에서 읽어보고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 갑자기 88년 주식시장 같은 시장 분위기가 만들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88년과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과거 속에서 배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2015년 11월 9월 월요일

lovefund이성수(KCIIA)올림

#88년주식시장 #교훈은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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